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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오늘

역사 속의 하루: 1925년 4월 21일, 그날의 사건들

by mknowledge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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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4월 21일은 국내외에서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날입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현장부터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까지, 이날의 역사적 순간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국내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 개최

1925년 4월 21일, 서울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는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1924년부터 준비되어 온 청년단체 통합 운동의 결실이었습니다. 당시 220여 개의 사회주의 계통 청년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조선청년총동맹은 일제 강점기 청년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창립대회에서는 중앙집행위원과 중앙검사위원 선출을 위한 10명의 전형위원이 선출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박일병이었습니다. 박일병은 무산자동맹회 간부, 신사상연구회 발기인, 신흥청년동맹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당대 청년운동의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청년총동맹은 이후 일제 강점기 사회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1925년 4월 박헌영 일파가 조선공산당을 조직하고 공산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를 별도로 조직하면서 사회주의 청년단체와 공산주의 청년단체로 분립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의 좌절

원래 1925년 4월 20일과 21일 양일간 개최될 예정이었던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는 일제의 탄압으로 무산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1925년 2월부터 화요회를 중심으로 한 '동조그룹'이 준비해왔으나, 대회 이틀 전인 4월 18일 일제는 대회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개최를 금지했습니다.

대회가 금지되자 4월 20일 밤, 전국에서 모인 대회 대의원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대회는 조선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토의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며, 전국적 규모의 통일운동 방침을 논의하려 했습니다.

해외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

일본 화물선 라이후쿠 마루 침몰 사건

라이후쿠마루

1925년 4월 21일, 미국에서 독일로 밀을 운송하던 일본 화물선 라이후쿠 마루(SS Raifuku Maru)가 노바스코샤와 캐나다 해안 부근에서 폭풍을 만나 침몰했습니다. 선박의 전신사 마사오 히와타리는 "Now very danger! Come quick!"(지금 매우 위험! 빨리 와주세요!)라는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으나, 영국 여객선 RMS 호메릭(Homeric)과 킹 알렉산더(King Alexander)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높은 파도로 인해 구조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배가 30도 기울어 있어 선원들은 구명보트를 내리거나 탈출할 수 없었고, 결국 38명의 선원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RMS 호메릭은 "북위 41도 43분, 서경 61도 39분에서 라푸쿠 마루 증기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했으나 생존자를 구할 수 없었음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성지 파괴

같은 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와하비 무슬림이 이끄는 네지드 왕국 정부가 메디나에 있는 알-바키 묘지의 영묘와 돔을 파괴했습니다. 이는 헤자즈 무슬림과 관련된 성지를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예언자 무함마드 가족의 묘지 표식물도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비행사의 대륙 횡단 비행 시작

이탈리아 비행사 프란체스코 데 피네도와 기계공 에르네스토 캄파넬리가 로마에서 전례 없는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호주로, 그리고 도쿄를 경유해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장거리 비행을 목표로 SIAI S.16 비행정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비행 시도였습니다.

1925년 4월 21일의 역사적 의미

이날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역사건주요 내용역사적 의미
한국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 220여 개 사회주의 계통 청년단체 결합 일제 강점기 청년운동의 중요한 전환점
한국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좌절 일제의 금지로 대회 개최 무산 일제의 사회운동 탄압 심화
해외 라이후쿠 마루 침몰 일본 화물선 침몰로 38명 전원 사망 국제 해상 재난 사건
해외 알-바키 묘지 파괴 사우디 정부의 이슬람 성지 파괴 이슬람 내 종파 갈등 표출
해외 대륙 횡단 비행 시작 이탈리아 비행사의 도전적 비행 항공 역사의 중요한 도전
 
 

시대적 배경과 의의

1925년은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사회운동과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 해 4월에는 조선공산당이 창당(4월 17일)되었고, 다음 달 5월 12일에는 일본의 치안유지법이 한국에 확대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4월 21일에 개최된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는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 세력이 결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파시즘 체제를 강화하던 시기였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집필하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은 20세기 초반의 국제 정세와 기술 발전, 그리고 종교적 갈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1925년 4월 21일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난 날로, 이러한 사건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측면에서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결론

1925년 4월 21일, 국내에서는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와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좌절 등의 사건이, 해외에서는 라이후쿠 마루 침몰, 이슬람 성지 파괴, 대륙 횡단 비행 시작 등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날의 사건들은 당시 한국과 세계의 정치, 사회, 종교, 기술 등 다양한 측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역사 속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925년 4월 21일의 사건들은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역사적 교훈과 의미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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