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4월 28일, 국내외를 뒤흔든 역사의 현장들
1925년 4월 28일은 일제강점기 조선과 세계 각국에서 문화, 스포츠, 정치 분야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날입니다. 이날 국내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어둠을 뚫고 민족의 의지를 드러낸 전국체육대회가 개막했으며, 해외에서는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아르데코 박람회가 파리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100년 전 이날의 사건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해보겠습니다.
국내 주요 사건: 제6회 전국체육대회 개막
일제 강점기 속 민족의 숨결, 체육으로 승화하다
1925년 4월 28일 오전 10시, 경성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제6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일제의 문화통치 정책 속에서도 조선 청년들의 저항 정신을 체육 활동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당시 경성일보는 "조선 청년들의 기상이 운동장 가득히 울려퍼진다"며 대회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대회는 축구, 야구, 정구, 육상 4개 종목으로 구성되었으며, 전국에서 1,2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특히 이날 시작된 축구 경기에서는 숭덕학교가 광성학교를 2:1로 꺾으며 소학부 부문 우승을 차지했고, 중학부에서는 배재고등보통학교가 경신학교를 3:0으로 완파했습니다. 이 같은 경기 결과는 일제의 교육 정책에 맞서 민족 사학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체육대회의 정치적 함의
일제 당국은 대회 허가 과정에서 "정치적 색채 배제"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실제 경기장에서는 은밀한 저항의 움직임이 존재했습니다. 경기 유니폼에 한글 자수 장식을 부착하거나, 응원가에 민요 선율을 삽입하는 등 소극적 항일의 표현들이 발견되었습니7. 이는 1920년대 신간회 운동과 함께 문화적 저항의 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해외 주요 사건: 예술의 새 지평을 연 아르데코 박람회
파리에서 타오른 예술 혁명의 불꽃

1925년 4월 28일 오후 3시, 프랑스 수상 에두아르 에리오의 개회 선언으로 파리 국제현대장식예술산업박람회가 정식 개막했습니다. 이 박람회는 20세기 최대의 예술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개막식에는 40개국 대표단과 4,000여 명의 귀빈이 참석해 전시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주요 전시관으로는 르 코르뷔지에의 '새로운 정신 전시관'과 라울 라리슈의 '프랑스 대사관관'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장 뒤낭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기하학적 패턴과 역동적 형태로 당시 예술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경제적 배경과 식민지 문화의 확산
박람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 재건을 위한 산업 부흥책의 일환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식민지에서 수입한 원자재(인도차이나의 고무, 서아프리카의 목재)를 활용해 전시품을 제작했는데, 이는 제국주의적 문화 확산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국내외 사건 비교 분석
구분국내 사건(전국체육대회)해외 사건(아르데코 박람회)
주제 | 민족 정신의 고취 | 예술을 통한 산업 부흥 |
주최 | 조선체육회 | 프랑스 정부 |
참여 규모 | 선수 1,200명, 관중 5만 명 | 40개국 참가, 관람객 1,600만 명 |
역사적 의미 | 식민지 저항의 문화적 형태 | 근대 디자인 양식의 정립 |
현대적 영향 | 한국 스포츠 문화의 기반 형성 | 글로벌 예술 트렌드 주도 |
1925년 4월 28일 타임라인
시간국내 사건해외 사건
10:00 | 전국체육대회 개막식(경성운동장) | - |
14:00 | 숭덕학교 vs 광성학교 축구 경기 | 파리 박람회 준비 최종 점검 |
15:00 | - | 아르데코 박람회 정식 개막 |
18:30 | 배재고보 야구팀 연습 경기 | 르 코르뷔지에 기자 회견 개최 |
20:00 | 선수단 숙소에서 민족 노래 합창 | 에펠탑 특별 조명 설치 완료 |
사건의 역사적 파장
체육대회의 유산
1925년 대회는 한국 체육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이듬해인 1926년 전조선축구대회에서 평양의 숭실학교가 일제의 방해를 뚫고 우승함으로써, 체육 경기가 민족 운동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이 대회 출신 선수들이 여자농구팀을 결성하는 등 성평등 운동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아르데코의 세계적 확산
파리 박람회는 미디어를 통해 글로벌 현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926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 건설에 아르데코 양식이 도입되었고, 1927년 일본 제국은 도쿄역 개보수 공사에 해당 스타일을 적용하며 제국주의적 위상을 과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경성부청사(현 서울시청) 건물에 아르데코 요소가 도입되어 식민지 근대의 양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문화적 교차로에서 바라본 역사
창경원 벚꽃놀이의 이중성
1925년 4월 말 경성에서는 창경원 야간 벚꽃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4월 28일 동아일보는 "불빛에 비친 앵화 아래 수만 관객이 북적"이라며 화려한 풍경을 전했지만, 이면에는 일제의 문화통치 정책이 숨어있었습니다. 일본식 벚나무 심기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이었으나, 조선 청년들은 이 공간에서 민족 시를 낭송하며 은밀한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기술과 예술의 충돌
당시 세계는 기술 발전과 예술 창조가 급속히 결합하던 시기였습니다. 파리 박람회에서는 최초로 네온사인 조명이 대량 적용되었고, 경성운동장에는 일본에서 도입된 전기 계시판이 설치되었습니다. 이 같은 기술 도입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근대화'의 이름으로 진행된 문화적 침탈의 일면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을 비추는 역사의 거울
1925년 4월 28일의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전합니다. 체육대회가 보여준 민족적 결집력은 현대 한국 스포츠의 기반이 되었으며, 아르데코 양식은 서울 도심 건축물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창경원 벚꽃놀이가 현재 서울의 봄 축제로 재탄생하며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날의 사건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세계화의 균형, 기술 발전과 전통 가치의 조화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석하는 키워드를 제공합니다. 100년 전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프랑스 국립박물관 연감 1925
- 동아일보 1925년 4월 28일자
- 위키백과 1925년 전국체육대회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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