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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오늘

역사 속의 오늘, 1925년 6월 12일: 국내외 주요 사건들

by mknowledge 202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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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오늘, 1925년 6월 12일: 국내외 주요 사건들

1925년 6월 12일은 일제강점기 조선과 세계 각국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날은 특히 중국에서 벌어진 반제국주의 운동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던 시기이자,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이 더욱 강화되던 때였습니다. 오늘은 100년 전 그날의 국내외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며,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1925년 6월 12일 국내 상황

1.1 일제강점기 조선의 정치적 상황

1925년 6월 12일 당시 조선은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해 4월 17일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었고, 5월 12일부터는 일제의 치안유지법이 시행되어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부산일보 1925년 6월 12일자에는 중국 상황과 관련된 여러 기사들이 실렸는데, "언론; 대 중국 정책 쇄신의 요[要]; 경제적으로 친선을 도모"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에 게재되었습니다. 또한 "상해로부터"라는 제목의 기사도 실려 당시 상하이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1.2 미쓰야 협정의 영향

1925년 6월 11일, 즉 하루 전날에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와 중국 펑톈성 경무처장 위전 사이에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만주 지역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단속하기 위한 비밀 협약으로, 6월 12일 이후 독립운동에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조항 내용                                                                                      세부 사항
한인 무기 휴대 금지 무기를 휴대한 한인의 조선 내 월경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일제에 인도
항일 단체 해산 재만한인 항일 단체를 해산시키고 무장을 해제하며 무기 몰수
지도자 체포 일제가 지명하는 독립운동 지도자를 체포하여 일본 경찰에 인도
상호 통보 한국인 취체의 실황을 상호 통보
 
 

2. 1925년 6월 12일 세계의 주요 사건

2.1 중국의 5·30 사건 여파 지속

5·30사건 포스터
5·30운동 당시 제국주의 성토 포스터

1925년 6월 12일은 중국 상하이에서 5월 30일 발생한 반제국주의 민중운동인 '5·30 사건'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 사건은 5월 15일 상하이의 일본계 직물공장에서 중국인 노동자 구정홍이 일본군 수비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5월 30일 상하이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영국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1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했으며, 이후 중국 전역으로 반제국주의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6월 초부터는 상하이에서 총파업이 시작되어 6월 12일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상하이 특파원 조덕진은 이 사건을 생생하게 르포로 전했으며, 6월 12일~15일자에 '상하이 5·30사건' 시위 르포를 연재했습니다.

2.2 상하이 총공회의 활동

5·30 사건 이후 조직된 상하이 총공회는 1925년 6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총파업을 지속했습니다. 6월 12일 현재 이 파업은 절정에 달해 있었으며, 약 2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2.3 기타 국제 동향

6월 12일 당시 세계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 중국 내 군벌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봉천군이 상해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 러시아는 조선에 영사를 임명하지 않기로 하고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 일본에서는 정본 합동을 꾀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3. 1925년 6월의 역사적 맥락

3.1 치안유지법 시행의 영향

1925년 5월 12일부터 시행된 일제의 치안유지법은 6월 12일 현재 조선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 법은 "국체를 변혁하고 또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는 그 정을 알고서 이에 가입한 자는 십 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제국 주권의 존립에 관한 사항으로 국체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독립운동 처벌의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3.2 조선공산당의 활동

1925년 4월 17일 창당된 조선공산당은 6월 12일 현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질 1925년 11월 '신의주사건'과 1926년 6·10만세운동사건 등으로 인해 조직에 치명적 손실을 받게 됩니다.

3.3 국내외 사건의 상호 연관성

1925년 6월 12일의 국내외 사건들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분                               국내 상황                                     해외 상황                                         상호 연관성
반제국주의 운동 조선공산당 창당, 독립운동 지속 중국 5·30 사건, 상하이 총파업 아시아 전체의 반제국주의 연대 의식
일제의 탄압 치안유지법 시행, 미쓰야 협정 체결 만주 지역 한인 탄압 강화 일제의 체계적인 독립운동 탄압 정책
국제 정세 소련의 조선 영사 미임명 중국 내 군벌 갈등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불안정
 
 

4. 1925년 6월 12일의 역사적 의미

4.1 반제국주의 운동의 확산

1925년 6월 12일은 아시아 지역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본격화되던 시기의 중요한 기점이었습니다. 중국의 5·30 사건은 단순한 노동 분쟁을 넘어 전 민족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이는 조선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4.2 일제 탄압 정책의 강화

미쓰야 협정의 체결과 치안유지법의 시행은 일제가 독립운동 탄압을 더욱 체계화하고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는 1920년대 중반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이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더욱 강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4.3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

1925년 6월 12일의 사건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를 보여줍니다. 중국 내 군벌 갈등,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 소련의 동아시아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5. 나가며: 과거에서 배우는 교훈

1925년 6월 12일의 국내외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시대 민족 해방 운동의 국제적 연대와 제국주의 세력의 체계적인 탄압 정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5·30 사건과 조선의 독립운동은 각각 다른 배경에서 시작되었지만, 모두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민족들의 저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쓰야 협정과 치안유지법으로 대표되는 일제의 탄압 정책은 독립운동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민족 해방 의지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억압이 저항을 낳는다는 역사의 교훈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1925년 6월 12일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국제 연대의 중요성과 민주주의 수호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동아일보 아카이브
  • 부산일보 근대사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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