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오늘, 1925년 5월 4일: 국내외 주요 사건들
1925년 5월 4일은 국내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사건이 발생한 날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일상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중요한 움직임까지, 100년 전 오늘의 여러 사건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1925년 5월 4일 국내 소식
1925년은 일제강점기 중 '문화통치'를 표방하던 시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압적인 식민 지배가 계속되던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대중 매체와 일상생활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1.1 조선일보의 파격적인 광고 등장
1925년 5월 4일자 조선일보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성인용품 광고가 처음으로 실렸습니다. 삼광사(三光社) 고무제품부가 발매한 '최신(最新) 삭구'라는 제품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 사회에서도 근대적 소비문화와 광고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이러한 광고의 등장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1.2 어린이날 행사와 일제의 탄압
비록 정확히 5월 4일의 기록은 아니지만, 1925년 5월 초에는 어린이날 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어린이날은 5월 1일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 행사들에 대해 일제 당국은 비상한 주의를 기울이며 탄압했습니다. 특히 1925년에는 기행렬용 어린이날 기가 "무엇이나 붉은색이라면 사지를 벌벌 떠는 경찰당국"에 의해 불온한 붉은색을 썼다는 이유로 사용이 불허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제는 어린이 교육과 관련된 민족적 행사조차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1.3 참의부 조직 개편 시기
1925년 5월은 독립운동 단체인 참의부가 조직 개편을 진행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2월 27일 고마령에서 일본 경찰의 급습으로 참의장 최석순 이하 42명이 순국한 후, 참의부는 독판부(督瓣府) 또는 진동도독부(鎭東都督府)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25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특사가 파견되어 논의를 거친 후 다시 참의부로 명칭을 되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 단체들이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조직을 유지하고 재정비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줍니다.
2. 1925년 5월 4일 세계의 주요 사건
2.1 제네바 군비 회담 개최
1925년 5월 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적인 군비 제한 협정을 모색하기 위한 제네바 군비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사회는 평화 유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이 회담 역시 그러한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는 이 회담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기록도 있어, 국제 협력의 한계도 엿볼 수 있습니다.
2.2 미국의 영토 확장: 스웨인스 섬 병합
같은 날, 면적 0.94 평방마일에 약 100명이 거주하던 스웨인스 섬이 미국 영토의 일부로 미국령 사모아에 병합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영토 확장 정책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3 농구 창시자 네이스미스의 미국 시민권 취득

현대 농구 경기의 창시자인 제임스 네이스미스 코치가 64세의 나이에 미국에 이주한 지 35년 만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캐나다 출신인 네이스미스는 1891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YMCA 국제훈련학교에서 농구를 발명했으며, 이후 이 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4 미네소타 포드 자동차 공장의 첫 조립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첫 번째 자동차가 조립되었습니다. 세인트폴 시장 아서 E. 넬슨, 미니애폴리스 시장 조지 E. 리치, 포드 임원들이 참석한 기념식이 열렸으며, 이 공장은 곧 하루에 50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급속한 성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 1925년 5월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
1925년은 전 세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다음 표를 통해 당시의 국내외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구분국내(조선)해외
정치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탄압 | 국제 평화 모색(제네바 군비 회담 등) |
경제 | 식민지 수탈 경제 | 미국 중심의 경제 성장(포드 자동차 등) |
사회 | 근대적 소비문화 등장, 어린이 권리 운동 | 식민지 확장(스웨인스 섬 병합 등) |
문화 | 전통과 근대의 혼재 | 스포츠의 발전과 국제화 |
4. 한국과 세계의 대비: 식민지와 제국의 움직임
1925년 5월 조선과 세계 강대국들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뚜렷한 대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 표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국가/지역주요 활동 및 사건역사적 의미
조선 | 일제의 문화적 탄압, 독립운동 지속 | 민족 정체성 수호와 독립 의지 표현 |
미국 | 영토 확장, 산업 발전, 이민자 유입 |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입지 강화 |
유럽 | 제네바 군비 회담 등 평화 모색 노력 | 전쟁 후유증 극복과 새로운 질서 수립 시도 |
일본 | 식민지 지배 강화, 국제적 영향력 확대 시도 | 제국주의적 팽창 지속 |
5. 1925년 5월 4일의 의미와 교훈
1925년 5월 4일의 사건들은 당시 세계와 조선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영토를 확장하고 국제 질서를 주도하려 했으며, 식민지 조선은 억압 속에서도 근대화와 민족 정체성 수호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날 행사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민족 교육과 문화 계승에 대한 일제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잘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 "새 조선의 일꾼은 어린이" 등의 구호가 보여주듯, 당시 지식인들은 미래 세대 육성을 통한 민족의 생존과 독립을 모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인용품 광고의 등장과 같은 일상의 변화를 통해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며 공존하던 과도기적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6. 나가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기
1925년 5월 4일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날의 사건들을 통해 식민지 시기 우리 민족의 삶과 세계사의 흐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노력, 세계 각국의 평화 모색과 산업 발전의 흐름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지침입니다. 1925년 5월 4일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선조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줍니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일보 1925년 5월 4일자 광고
동아일보 아카이브
미네소타 역사협회 자료
위키백과, 1925년 5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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