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오늘, 1925년 5월 31일: 국내외 주요 사건들
1925년 5월 31일은 한국과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날은 특히 중국에서 벌어진 노동자 파업 사태가 절정에 달했고, 조선에서는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소식이 전해진 특별한 하루였습니다. 100년 전 그날의 국내외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며,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배경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1925년 5월 31일 국내 소식
1.1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 발표

1925년 5월 31일 동아일보에는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 발표에 관한 중요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예술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1922년부터 시작되어 1944년까지 총 23회에 걸쳐 열린 가장 큰 규모의 미술 공모전으로, 당시 공적인 전문 미술 교육 기관이 없던 상황에서 미술계의 일반적인 경향을 주도하는 중요한 전람회였습니다.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제1부 동양화의 3등 당선작으로 이상범의 '소슬(蕭瑟)'이 선정되는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입상했습니다. 이 전람회는 일제의 문화정치 일환으로 시작되었지만, 조선인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등용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작가들은 전문적인 미술 교육 기관이 없는 조선에서 조선미술전람회를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여겼습니다.
별다른 문화 행사가 많지 않던 당시 상황에서 조선미술전람회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들이 개막을 전후하여 매년 대서특필하여 보도했습니다. 입상작이 발표되면 명단을 신문 전면에 걸쳐 보도하고, 특선을 수상한 작가들의 인터뷰도 자세히 실었습니다.
2. 1925년 5월 31일 해외 주요 사건
2.1 중국 청도파업 사태의 심각한 전개
1925년 5월 31일 시대일보에는 중국에서 벌어진 심각한 노동 분쟁에 대한 긴급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군대가 포위발포, 사상까지 생긴 청도파업, 수모 70여명 검속, 직공은 면화에 방화, 군함출동 우준비"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에 실렸습니다. 이는 5월 28일 청도의 일본공장에서 발생한 파업이 급격히 악화되어 봉계군벌에 의해 8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로 이어진 후속 상황이었습니다.
이 청도파업 사건은 5월 30일 상하이에서 발생한 5·30운동과 함께 중국 전역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는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일본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우는 형편없었고 노동환경 또한 열악했습니다. 이들은 육진육출(六進六出)이라 하여 새벽 6시에 공장에 들어가 저녁 6시에 나왔으며, 임금은 일당 20전 혹은 30전으로 매월 6원에서 9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는 당시 노동자 1명의 생활비 11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2.2 국제 정치 상황
같은 날 시대일보에는 유럽 정세에 관한 여러 기사들도 실렸습니다. "영불협정성립, 군비해제위반문제"와 "정부신임안, 하원통과" 등의 기사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불제휴 필요를, 주일불사 역설"이라는 기사를 통해 당시 일본과 프랑스 간의 외교적 협력 논의도 엿볼 수 있습니다.
3. 1925년 5월 전후 주요 사건들의 맥락
3.1 5·30운동의 배경과 전개
1925년 5월 31일의 청도파업 보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5·30운동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5월 10일 상하이 내외면 제3공장과 제4공장에서 파업이 시작되었고, 5월 14일에는 제12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어 5월 15일 고정홍이 총에 맞아 죽는 유혈사건이 일어났고, 5월 28일 청도의 일본공장에서도 파업이 발생하며 8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5월 30일에는 상하이에서 학생 2,000여 명이 공공조계에서 강연을 통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성원했으며, 영국순포가 사격을 가해 사망자 11명, 부상자 20여 명이 발생하는 '5·30 참안'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반제국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5월 31일의 청도파업 관련 보도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4. 1925년 5월 31일 시대적 의미
4.1 국내 문화예술계의 발전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 발표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선의 문화예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일제의 문화정치 일환으로 시작된 전람회였지만, 조선인 예술가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펼치고 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이상범을 비롯한 당시 화가들의 작품들은 전통과 근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조선 미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습니다.
4.2 동아시아 반제국주의 운동의 확산
중국에서 벌어진 5·30운동과 청도파업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높아진 민족의식과 노동자 계급의식이 결합되어 나타난 대규모 반제국주의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노동 분쟁을 넘어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침탈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조선의 언론들이 이러한 중국 상황을 상세히 보도한 것은 조선인들 역시 이러한 반제국주의 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5. 1925년 5월 31일 주요 사건 비교표
문화 |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 발표 | - |
정치·사회 | - | 중국 청도파업 사태 지속 |
국제관계 | - | 영불협정 성립, 일불제휴 논의 |
언론 보도 | 동아일보 문화 소식 중심 | 시대일보 국제 정세 중심 |
6. 역사적 교훈과 현재적 의미
1925년 5월 31일의 사건들을 돌아보면,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려 했던 조선인들의 노력과,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했던 중국 노동자들의 용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드러난 문화적 저항 정신과 중국 5·30운동에서 보여준 반제국주의 투쟁 의지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특히 당시 동아일보와 시대일보 등 민족 언론들이 국내 문화 소식과 해외 정세를 균형 있게 보도하며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던 모습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100년 전 5월 31일의 이러한 사건들은 문화와 정치, 예술과 사회운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역사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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